남보석 목사 아가서 강해 5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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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30 21:38 조회48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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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오늘날 의심으로 가득 찬 도마처럼 모든 성도들에게 위와 같은 칭찬의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 것임을 우리는 알기를 바라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더 깊은 영적인 수준으로 나가기 위한 과정에서 오는 성도들이 경험하게 되는 많은 일들을 소홀히 하지 말고 귀중하게 간직해야 한다.
요셉은 종살이 옥살이를 소중히 알고 간직하며 그러한 일들이 자기를 살리고 가족을 살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었다고 간증하는 것을 보며 우리도 많은 깨달음이 있기를 바란다.
지금 현재의 단계보다 훨씬 월등한 깊은 경험이 여인을 기다리고 있음을 있지 말자!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이제 알아야 한다.
신앙생활 속에 반드시 반복되는 경험들과 같은 말씀들을 반복해서 배운 경험들이 있음을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이 있음을 주님께서는 우리가 알기를 원하시고 있다.
어린아이의 단계에서 가르치시고 알게 하는 단계보다 연단을 받으며 후에 깨닫게 하시는 말씀과 교훈이 더더욱 심오하다는 것이다.
실로 체험은 비슷한 것 같지만 영적인 면을 깨닫는 데에는 많은 분량을 얻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8절 “왕후가 육십이요 비빈 이 팔십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지금 여기에 여인들은 왕과 깊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다.
세상적인 면으로 보면, 솔로몬 생애의 부정적인 면을 보이는 여자관계의 문제로 크게 비방 거리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이 내용을 삽입한 것은 하나님의 과감하신 의도와 영적으로 심오한 진리를 보여 주시기 위함인 것이다.
주님은 순수하고 가장 깊은 영적 사랑으로 이 땅의 모든 성도를 소유하시기를 원하시고 하나 되기를 원하심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과 주님은 더욱 깊은 관계를 맺게 하고자 하시는 강한 중심의 표현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여기에 왕후 비빈 시녀로 묘사하는 부분은 아브라함 ,에녹 ,엘리사 ,요한 등등의 차이로 보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이들의 사역은 각각 다르게 쓰임 받았으나 권리나 누리는 영광은 같다 다 같은 자녀요 영적인 신부이다.
단지 시대에 맞게 쓰심에 차이는 있는 것이다.
물론 영적인 차원도 다르다는 사실을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9절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 그는 그
어머니의 외딸이요 그 낳은 자의 귀중히 여기는 자로구나 여자들이 그를 보고 복된 자라하고 왕후와 비빈들도 그를 칭찬하는 구나”
이 의미는 주님의 영원하신 영은 우리가 주님의 마음에 하나뿐인 사람이 되시기를 원하시는데 주님을 위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충만한데 이르러서 주님의 목적을 이루어 드리는 성도는 누구나 하나뿐인 성도로 보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도들은 주님이 보실 때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특별히 선택된 성도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구절에서 사랑하는 여인으로 대표되고 있다.
이 수준에 성도들은 주님을 향한 사랑이 주님의 전적인 은혜로 충만해져 있는 여인은 가장 귀중한 성도로 불리게 되었다.
주님이 여인을 은혜 안에 보시는데 이런 평가는 과분 이상의 칭찬인 것이며 실제적 은혜는 하나님께서 죄를 사해주신 은혜 뿐 아니라 주님께서 여인의 영안에서 역사한 모든 은혜까지를 포함해서 말하는 것이다.
주 예수님께서 많은 일들을 이루어 줄 수 있도록 사람은 항상 많은 것을 받을 수 있도록 마음이 항상 열려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성도들이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아 ,자기 생각 ,의지 ,은밀한 죄들 ,무지함 ,혈기 ,성경의 무지 ,하나님께 무지함 ,거짓말 ,외식 ,양심의 더러움 ,두려움 ,근심 등등이다.)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을 제한하는 치명적인 요소가 됨을 잊지 말라 이런 것을 피할 때 귀중히 여기는 자가 되는 것이고 주님께 속한 모든 성도들은 주님께로 났으며 이는 주님과 함께 되어 은혜 가운데 충만한 지경에까지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여자들이 그를 보고 복된 자 라고 하고 왕후 와 비빈들 도 그를 칭찬하는 구나”
진심으로 아직 성숙한 단계의 이르지 못하고 온전히 희생하지 못한 성도들도 이같이 성숙하고 헌신하는 성도들을 알아 볼 수 있다.
비록 똑같은 영적 분량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이들은 여인에게서 보는 것과 같은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을 하나님의 거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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