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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45/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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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9 17:24 조회5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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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히 알려 준다. 성전에서 이사야를 부르시며(65:1) 우상에 빠져있던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24:2-3)의 그 부르심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며 그의 긍휼하심과 인애, 그리고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배제하고는 생각할 수 없다.

3) 믿음은 선택의 결과이며, 선택은 믿음에 의존하지 않는다.

칼빈은 사람의 의지로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였다는 생각은 오류이며,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에 그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본다. 그리고 또한 믿음에 의해서 확인되지 않으면 선택은 의심스럽다고 말하는 것 역시 오류라고 본다.

 

4) 선택에 대한 확신을 얻는 바른 방법과 그른 방법들이 우리가 선택되었다는 확신을 얻으려면 선택을 확실히 증명하는 부수적인 표징들을 붙잡는 것이다. 우리는 자주 나는 선택되었는가?”, “나의 구원은 어디서 오는가?” 라는 질문을 한다.

사탄은 항상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성도를 미혹시키려 하지만, 칼빈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은 항상 하나님의 부르심을 출발점과 종점으로 삼음(to begin with the calling of God and to end with it.)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면 누구도 우리를 송사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사랑에서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8:33).

 

5) 선택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해하며 인정해야 한다.

칼빈은 선택의 교리가 단순히 신학의 이론을 위한 이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은혜를 입은 자의 구원과 영생에 이르는 비결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선택은 그리스도를 떠나서 논의할 여지가 없는 것이라 본다.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6:35)와 교제를 하지 않는다면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이 기록될 수도 없는 것이다(21:27). 그러므로 우리가 선택을 받은 자라면 그리스도로 옷 입고(13:14), 그가 살아 계시므로 우리도 그와 함께 영생에 이른다는 것을 확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3:16).

 

2. 그리스도의 보호 하에서 선택된 자들의 견인은 확실하다:

반대론자들이 인용하는 성경 구절들을 해석함.

 

1)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그들의 선택이 불변, 영속하는 확신을 주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모든 사람을 그의 보호 하에 두셨다고 선언하신다(6:37, 39, 17:6, 12). 그리스도께서는 기꺼이 우리의 목자가 되어 주시며, 우리가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그의 양떼에 넣어 주시겠다고 선언하신다(10:3). 그러므로 우리는 그를 영접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일까? 또 다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 이유는 주님이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22:14)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주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6:37)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것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확신에 찬 약속이 있다(6:39). 그리고 이는 만유의 주로부터 주신 것이기 때문에 이보다 더 큰 분이 없으므로 결코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이다(10:27-29).

그러므로 우리가 부르심을 받아 이미 그의 소유가 되었다면, 영원히 안전할 것이다. 이것이 또한 부르심과 믿음에 이어 연결되는 성도의 견인(堅忍)이다.

 

2) 참으로 믿는 사람은 탈락하지 않는다.

우리가 멸망의 자식’(17:12)이 아니라면, 그리스도께서는 진정한 믿음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모두 아버지께서 주신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가 그들의 보호자가 되시므로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3:16, 6:39).

 

3) 일반적인 소명과 개별적인 소명(22:2 이하)

예수 그리스도께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라고 하신 말씀(22:14)에 대하여, 오해가 있다.

칼빈에 따르면 소명에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가 있는데, 일반적인 소명(universal call)은 외면적인 복음의 선포를 통하여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자신에게로 부르시는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극히 개별적인 것(special call)으로 대개는 성령의 내적인 조명을 통하여(by the internal illumination of the Spirit) 신자들에게만 주신다고 본다.

따라서 믿노라고 하면서 교회에 들어왔으나 그리스도의 성결을 입지 않은 사람들은 일반적인 소명이라 할 수 있는 청함을 받은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에, 혼인 잔치에 초청받은 자가 예복을 입지 않아 쫓겨나는 것처럼 중생의 영을 동반하지 못함으로써 악인으로 쫓겨나게 될 것이다.

 

4) 유다의 예는 반대의 증가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가롯 유다는 그를 사도직으로 택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그를 버리셨을까?

가롯 유다는 그리스도의 양이기는 하였지만, 참으로 그리스도의 양인 것이 아니라 단지 한 자리를 차지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칼빈의 설명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참된 양이라면, 즉 하나님의 온전한 부르심에 따라 예정을 입어 선택된 사람이라면 유다와 달리, 더욱 견고한 믿음 안에 설 수 있다는 점에서 유다의 예가 결코 선택 교리의 반대 증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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