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34/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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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8 21:51 조회57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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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을 구별한다. 전자는 그 자체로서는 필연적이지 않고 하나님의 작정에 의하여 결정된 것을 말한다면, 후자는 어떤 원인들에 대해 알려져 있는 결과를 의미한다.
따라서 칼빈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은 육체를 소유하셨던 만큼 온전한 사람이라면 그 뼈가 부러질 수 있는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지만, 그 뼈를 부러뜨릴 수 없었으며, 이는 또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작정)이었다(요 19:33, 36; 슥 12:10). 그러므로 이 말씀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성자의 뼈를 부러질 수 있는 것으로 만드셨으나 실제적으로는 이를 부러지지 않게 하심으로써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을 자기 계획의 필연으로 불가능하게 하셨다”(God made the bones of his Son frangible, though he exempted them from actual fracture; and thus, in reference to the necessity of his counsel, made that impossible which might have naturally taken place.)는 점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작정하신 것(결과)은 필연적으로 발생하지만, 그 작정의 필연적 결과는 우연적(우발적) 상황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일어나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작정은 운명이나 숙명은 있을 수 없으나, 그 작정을 이루심에는 결과는 필연적 결과지만 우연적 상황이나 가상적인 필연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뜻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점에서 칼빈은 우연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상대적 필연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제18장 섭리교리에 대한 올바른 적용은 우리에게 큰 유익을 준다.
1. 과거와 미래에 관계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설명대하여
1) 하나님의 방법의 의미의 대하여
칼빈은 우리가 섭리를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든다.
첫째, 하나님의 섭리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래와도 관계된 것이다.
둘째, 섭리는 만물의 결정적인 원리로서 이 섭리는 때로는 매개체를 통하여, 때로는 매개 없이, 때로는 모든 매개체와 반대로 작용한다.
셋째, 섭리는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위한 자신의 관심을 나타내시되, 특히 더욱 친근히 보호하시기를 원하시는 교회를 지배하심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경계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데 있다.
다만 한 가지 유의할 점은 하나님의 자애로운 사랑과 자비 혹은 엄격하신 공의가 자주 섭리의 전 과정에서 뚜렷이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모든 사건의 원인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인간사가 운명의 맹목적인 충동에 의하여 운행된다는 어리석은 사상이 잠입할 수도 있으며, 또한 하나님을 향하여 저항하기도 하는 교만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칼빈은 우리가 만일 정숙하며 침착한 마음으로 배우려 하기만 한다면, 그 최종적인 결과는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항상 자신의 계획을 세우는데 최상의 이유를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실 것이라 믿는다(시 40:5과 요 9:3을 묵상해 보라).
2)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관찰해야 한다.
칼빈은, 하나님을 자기를 지으신 이요 우주의 창조주로 생각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를 두려워하며 공경하는 자가 아니면, 아무도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바르고 유익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온 우주의 창조자이시며 그의 지혜와 계획은 무한하시고 그의 판단은 바다와 같다(시36:6)고 볼 때에만, 하나님의 섭리를 바르게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무릎 꿇고 그의 다스리심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을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롬 11:33-34; 시 40:13-14)라고 하였던 것이다.
3)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의 책임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불경건한 자들은 현재 발생한 것 모두를 하나님의 섭리 탓으로 돌리고, 분명히 그 사건과 직접 관계있는 인간의 책임에 대하여는 눈 감아 버린다.
따라서 칼빈은 선량한 시민을 살해한 자나 남의 물건을 훔친 자 또는 간음한 자에 대하여 하나님은 예지하시고 정해 놓은 계획을 수행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러한 범죄자는 결국 하나님의 섭리의 대행자일 뿐이라면서, 저들의 범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룬 미덕이라 변명한다고 말한다.
4)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숙고(熟考)와 조화된다.
솔로몬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자는 여호와시라”(잠 16:9)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칼빈에 따르면 “우리가 앞날을 준비하며 모든 문제를 정리할 때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에 의하여 방해받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의지에 항상 복종한다는 것을 의미 한다”고 이해하였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에게 처한 생명의 위험에 대하여 경계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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