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구원론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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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1-02 16:17 조회59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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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효력”은 우리가 그 효력을 느낄 수 있는 효력이다. 칼빈은 3가지로 소개한다.
“회개” “죄의 용서” 그리고 “삶의 실제적 성화 ”가 그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유익은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은혜의 이와 같은 효력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으면 여전히 모호하게 된다.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주신 구원의 유익은 칭의, 중생 그리고 성화와 영생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부활이 이미 시작한 구원의 과정의 완성과 궁극적 목표이다. 구원의 전체 내용은 칼빈에게서 완전히 설명되었다.
칼빈의 구원에 대한 견해와 바울의 견해가 완전히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롬8:30)
Ⅱ.칼빈의 구원론
1. 구원론의 출발점
칼빈의 구원론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신학적 진리는 무엇인가?
물론 기독론을 떠나서 구원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이해함이 없이 중보자의 사역을 이해할 수 없다.
원죄로 인하여 죄인이 된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우리 죄인은 구원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역이 필요하다.
물론 칼빈의 경우 죄론이 대속의 교리에 앞서지만 여전히 죄론이 대속의 교리의 출발점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칼빈의 가르침은 그 원천이 삼위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에 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주시는 사랑이다. 이 사랑이 칼빈의 대속의 교리의 출발점이다.
이 사랑이 칼빈 신학 전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구원보다도 선행하는 것이다. 이 사랑에 의하여 성부 하나님은 더 앞서 계시며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의 화목을 예기하신다.
2.하나님의 심판아래 있는 죄인
우리는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칭의의 은혜를 받기 전에 하나님의 심판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인간은 인간의 의를 내 세울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논의가 인간 법정의 공의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법정의 공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완전해서 모든 부분이 완전무결하며 아무 부패나 오염이 없는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심판자 하나님을 우리 마음대로 상상하면 안 된다.
성경이 묘사하는 대로 이해해야 한다. 그의 광채 앞에서는 별들이 어두어지며(욥3:9) 그의 순결에 비하면 모든 것이 불결하며(욥25:5), 그의 의는 천사들도 감당할 수 없으며(욥4:18),유죄한 자를 무죄하다고 아니하시며(욥9:20), 그의 복수에 한번 불이 붙으면 지옥 밑바닥까지 뚫고 들어간다.(신32:22; 욥26:6)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자가 없다.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모든 사람은 멸망할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율법의 의를 이룰 수 없다.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갈3:10;신27:26) 그러므로 인간은 심판자 앞에서 자기 죄를 인정하고 용서받기를 원해야 한다.
하나님의 의는 사람의 행위로는 결코 만족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죄 때문에 진노를 받을 자, 영원한 죽음의 저주를 면치 못할 자, 구원을 얻을 희망이나 축복을 받을 길이 전혀 없는 자, 사탄의 종, 죄의 멍에를 멘 포로, 결국 무서운 멸망을 당할 운명이며 이미 멸망 중에 있는 자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전에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하는 불의가 우리에게 있었다.
하나님 앞에서 저주와 정죄를 받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기와 결합할 때에 한해서 하나님과 완전히 또 굳게 결합할 수 있다.
그리스도를 힘입어야 우리의 죄가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을 면할 수 있다. 죄가 돌아오면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속죄로 우리를 죄악에서 구하시려 하였을 때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선행한다.
3.하나님의 사랑
속죄는 하나님의 사랑의 원인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속죄의 원인이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받아 주신 그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서 확고한 기초를 갖는다.(엡1:4-5)
하나님은 독생자를 죽음에 내어 주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사랑을 선언하셨다.(요3:16) 그 반대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호의를 갖기 전에는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 였다.(롬5:10)
칼빈은 어거스틴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은 헤아릴 수 없고 변함이 없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화해를 얻은 후에 하나님이 비로소 우리를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다.
우주 창조 이전에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와 함께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미워하며 악을 행했을 때에도 그는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이다.
그가 우리를 미워하신 때에도 놀랍고 거룩한 방법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는 그가 창조하시지 않은 우리의 상태 때문에 우리를 미워하셨지만, 우리의 죄악이 그의 피조물을 완전히 소멸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각 사람에게 있는 우리가 만든 것을 미워하시는 동시에, 그가 만드신 것을 사랑하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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