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28/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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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8 21:40 조회57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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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세르베투스(Serbetus)와 그의 동류들과 같은 광신자들은 관념(觀念) 내지 사변(思辨)에 기초한 새로운 속임수로 사실상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함으로 인하여 만사를 혼란케 하였다고 비판한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본질 안에 삼위가 존재한다고 하면 하나님은 셋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되며, 이것은 하나님의 유일성과 상치되기 때문에, 공상적인 삼부조(三部組)가 될 뿐이라는 것, 그리고 위란 하나님의 본질 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하나님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표현해 주는 어떤 외적인 관념이라 주장했다.
심지어 그는 하나님의 분배의 양식에 따라 성자와 성령 안에 하나님의 일분분이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성자와 성령의 신격을 파괴하였으며, 때로는 하나님의 아들과 성령을 보통의 피조물과 무분별하게 혼합시키기도 하였다고 한다.
3) 성자는 성부와 동일한 하나님이시다.
한편 또 다른 자(Valentine Gentile)는 세르베투스와 같은 불 경건을 피하기 위하여 삼위가 있다는 고백은 하지만, 이들은 성부만이 진실로 또한 당연히 유일한 하나님이시며 이 하나님께서 성자와 성령을 지으시고 이들에게 자신의 신격을 주입하셨다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 그리스도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성부만이 하나님이라는 결론을 도출해 낸다.
그러나 하나님은 참되시며 유일하신 하나님이셨으며(사 6:1), 이 하나님을 가리켜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라 단정하였다(요12:41). 뿐만 아니라 이들은 성령을 성부의 영이라고 말하지만 바울사도는 성령을 성부와 성자의 영이라고 증거하고 있다(롬 8:9).
이처럼 이들이 주장하는 경우 결국은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것은 물론, 성부만이 본질이며 성자와 성령은 부분적인 본질에 불과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칼빈에 따르면 본질은 성부와 성자에게 다 같이 전적으로 또는 완전하게 공통적인 것이며, 본질에 관한 한 아무런 구별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그렇지 않다면 그리스도는 상징적인 하나님이요 외형적인 명목상의 하나님에 불과할 것이다.
4)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이라는 명칭은 성부만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칼빈은 성경에서 어떤 조건 없이 하나님을 언급할 때 언제나 그것은 성부에게만 적용된다고 저들은 주장하지만, 그와 같은 주장은 허위라고 말한다.
즉,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실 그때부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가 만세전에 성부로부터 나신 영원하신 말씀이었다는 이유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과 연합시키기 위해 중보자의 위격과 직책을 취하셨다는 사실에서 말씀에서 하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바울사도는 그리스도는 종의 형체를 취하시기 전에 벌써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셨다는 사실을 가르쳤으며(빌 2:6-7), 이사야선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사 25:9)라고 함으로써 성부만이 하나님이 아니라 성자 그리스도 역시 구속 주이신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그리스도께서 성부 안에 있는 하나님이었다면서, 그의 신성을 훼손시키려 하지만 칼빈에 따르면, “우리는 순서와 지위에 있어서 신성의 근원이 성부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치 성부가 성자의 신격의 원작자이거나 한 것처럼 본질이 성부에게만 고유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행위이다”고 단정한다.
특히 모세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라고 할 때, 성부가 말씀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성부가 그 말씀과 함께 계셨음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5) 삼위는 공통적으로 신성을 소유한다.
칼빈은 거듭해서 삼위일체를 사실상 부정하고 성자와 성령을 부분적인 본질로 보려는 무리들에 대하여, “우리는 성경에 입각해서 보면,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 하나이시며 그렇기 때문에 성자, 성령의 본질도 비 발생 적이다.
다만, 성부는 순서상 처음이시며 자신으로부터 모든 지혜를 낳으셨기 때문에, 모든 신성의 기초가 되시며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저들(삼위일체에 대한 비판자들)은 어리석게도 우리의 견해가 사위일체(四位一體)를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우리는 위를 본질에서 분리시키지 아니하고, 오히려 삼위를 구별하되 그 각자가 본질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도록 한다는 사실이다.…(그들은) 우리가 세 하나님이 본질로부터 유래된다고 상상이나 하듯이…그 무익한 질문에…본질이 삼위일체의 부분 혹은 한 성원(成員)으로서의 구별을 짓는 것은 아니지만, 그 위들은 본질 없이 혹은 본질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성부는 그가 하나님이 아닌 한 성부가 될 수 없으며 성자 또한 그가 하나님이 아닌 한 성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격은 절대적인 의미에서 자존하신다고 우리는 고백한다.
따라서 우리는 성자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자존하신다고 고백하는 것이요, 우리는 그가 성자인 이상 그가 성부로부터 오셨다는 점에서 그의 위에 관해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본질에는 기원이 없으나 그의 위의 근원은 하나님 자신이다.”고 말하면서, 옛날의 정통적인 저술가들의 논의를 따라 삼위일체에 대하여 말할 때에는 언제나 이 명칭은 (본질상의 나눔이 아니라) 오직 ‘위’에만 적용시켰다고 말한다.
6) 성육신하신 말씀이 성부에게 예속된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그리스도께서 본래 하나님이라고 하면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는 성경귀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 아닌가라는 비판에 대하여, 칼빈은 “한 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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