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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9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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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30 16:05 조회6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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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을 준다고, 또 설교 이외에 개인적인 충고와 교정을 배격하는 사람은 교회를 무너뜨리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한다.

한편 치리에 의해서도 죄악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그렇다고 평신도가 교회를 떠나서도 안 되며 목사 자신도 목회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끝으로 칼빈은 금식과 기도에 대해서 논한다. 금식은 세 가지의 목적을 가진다.

첫째 우리는 우리의 육체를 어거하기 위하여 금식해야 하는데 이는 공적인 금식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신체적인 조건이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둘째 개인이든 단체이든 기도를 위한 준비 작업으로 금식이 필요하다. 셋째 하나님의 존전에서 자기를 낮추어 참회하기 위하여 금식이 필요한데 이는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국가적으로 타당하다.

그런데 금식은 기도를 동반해야 한다.

그리고 금식의 성격에 관하여 칼빈은 그리스도인의 전 생애는 금식과 유사한 검소함과 깨어있음으로 일관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기간 동안 일상적인 생활의 섭생보다 적게 먹는 것도 가능하며 음식의 질과 양을 적게 하는 방법도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내적인 느낌과 죄에 대한 증오 및 하나님을 두려워한 나머지 죄악에 대한 참된 통회이다.

 

15. 서원

 

누구든지 무모하게 서원하면 비참한 자승자박에 말려 든다.

서원에 있어서 오류를 피하려면 3가지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칼빈은 말한다.

 

첫째. 우리는 누구에게 서원을 해야 하나? 우리가 관계하는 하나님은 우리의 올바른 순종으로 기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아무리 겉이 훌륭한 종교라도 그것이 인간이 날조해낸 것이라면 저주하신다.

둘째. 이 서원을 하고 있는 우리는 누구인가? 자신의 능력 한계를 벗어나서 혹은 그의 소명에 배치하여 서원을 일삼는 사람은 무모한 사람이다. 예를 들어 교황이나 사제, 수도사와 수녀 등이 자기들의 인간적인 연약성을 무시하고 마구 독신 생활을 감행하려고 서원하는 것은 결코 성경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셋째.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우리는 서원을 하는가? 서원하는 사람의 의도가 중요하다. 하나님이 인정하실만한 의도가 있어야 한다.

모든 믿는 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서원이 있다. 이것은 세례 받을 때에 하는 서약이며 성만찬을 받을 때에 다시 서원한다.

이는 곧 사탄을 대적하고 육신의 악한 욕망을 따르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모든 거룩한 계명을 수종하겠다는 서원이다.

그런데 칼빈은 고대 교회를 위해서 수도원들이 끼친 훌륭한 영향력, 특히 어거스틴의 수도원 제도를 이상적인 것으로 소개하면서 칼빈 당시의 수도원은 모든 다른 교회들보다 거룩하고 완전하다고 뽐내면서도 그리스도께서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명하신 경건이 아니라 특별한 종류의 경건을 꾸며냈다고 지적하였는데 이는 서원의 타락상 그 자체였다.

저들은 수도원적인 삶만이 천사 적이요. 완전하고 모든 허물로부터 청결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기성교회의 모든 교인들은 저열한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은혜와 신앙으로 구원을 얻은 자들에게 거룩한 삶을 살 것을 요구할 때 이 거룩한 삶은 수도원적인 삶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 얻은 기독교인으로서 직업의 현장 혹은 모든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칼빈은 말한다. “모든 소유를 포기하고 이 세상에 대한 근심 걱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나 하나님께서는 집안 일을 돌보는 데에 헌신하는 것을 더 좋아하신다.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은둔하여 철학이나 일삼는 것도 훌륭하지만 인류를 증오하고 사막이나 광야로 도피하여 주님의 명하신 모든 의무를 포기하는 것은 결코 기독교적 온유가 아니다.”

 

16. 성례전

희랍어로 신비라는 말이 라틴어로는 성례이다.

칼빈은 로마카톨릭의 7성례와는 달리 세례와 성찬 두 가지만을 주장하며 그 중심은 말씀에 있는데 바로 이 성례전이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일이다.

칼빈은 성례전에 참여하기 전에 무엇보다 설교를 통해서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설교를 들을 때에 비로소 보이는 표적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고 하였고 약속 혹은 복음이 먼저 선행하지 않는 성례는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어거스틴을 따라 성례란 보이는 말씀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말씀은 단순히 귀를 때릴 뿐이요 성례전도 다만 눈앞에 전시될 뿐이다. 전혀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성례전이 정말 자체의 직책을 수행하려면 내적인 선생인 성령이 와서 마음을 감동시켜야 한다.

결국 말씀과 성례전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데 이 때 성령이 우리의 굳은 마음을 녹이고 순종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은 성례전을 통하여 무슨 신비스러운 그 무엇을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해준다.

한편 할례, 결례와 세례, 희생 제사 등과 같은 구약의 성례들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해석의 열쇠로 해야 그 뜻이 풀리는데 우선 할례란 하나님께서 이미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복음의 은혜)의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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