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37/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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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8 21:54 조회59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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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악에 대한 작정이 단순한 허용 그 이상의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의 자리에 단순한 허용이라는 것을 대치시키려는 자들은 하나님은 망대에 앉아서 우발적인 사건들을 기다리고 있는 분이시며 그렇기 때문에 그의 결정은 인간의 의지에 좌우된다고 하는 것과 같은 불합리하고 어리석은 말을 내놓는 자들이라 칼빈은 비판한다.
이러한 점에서 칼빈은 “하나님은 선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악한 것들을 허용하시나, 그는 적극적으로 그러한 것들을 계획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라는 칼 바르트와 같은 분석은 명확히 성경에 위배된다고 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는 ‘단순한 허용’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의 발동을 통하여 ‘행하는 것’이다.
2. 하나님은 인간 안에서 어떻게 일을 추진하시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인간 안에서 어떻게 그 일을 행하시는가?
하나님의 섭리는 단순한 허용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악의 조장자이신가? 즉 하나님께서는 행악자들을 버리심으로써 사탄에게 저들의 눈을 어둡게 하도록 허용하신 것인가?
칼빈은 “우리의 마음의 생각은 하나님의 은밀한 영감(靈感)에 의하여 하나님의 목적으로 향하게 된다”(Whatever we conceive in our minds is directed to its end by the secret inspiration of God.)고 본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을 어둡게 하시며(사 29:14), 잠자는 영으로 저들의 눈을 감기시며(사 29:10), 저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신다(출 14:17)고 기록되어 있어, 마치 하나님께서 악을 조장하시는 분 또는 그들의 악을 단순히 허용하는 것처럼 오해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출 4:21), 또는 그 마음을 더욱 완강하고 굳게 하셨으며(출 10:1,20,27 등),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삼상 16:14)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기도 한다(고후 4:4)고 기록하고 있는데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단순한 허용’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의 발동을 통하여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하나님의 의지가 모든 것의 원인으로 여겨지므로 나는 하나님의 섭리를 모든 선택받아 성령의 통치하에 있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낼 뿐 아니라, 유기된 자들은 순종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계획과 일하심에 대한 결정적 원리”로 요약한다(The sum of the whole is this, - since the will of God is said to be the cause of all things, all the counsels and actions of men must be held to be governed by his providence; so that he not only exerts his power in the elect, who are guided by the Holy Spirit, but also forces the reprobate to do him service.).
3. 하나님의 의지는 단일하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율법에서 공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은 행악자들을 버리심으로 그들이 악을 범하도록 그의 은밀한 계획 속에 작정하셨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의지는 두 개의 상반된 것이 아닌가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하여 칼빈은 욥이 도둑을 만나 재물을 약탈당했을 때 그들의 불의한 행동과 악행이 하나님의 의로우신 채찍이었으며, 엘리의 아들들이 그의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욥 1:21; 삼상 2:25)고 한 데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의지는 결코 모순이 아니다.
다만 칼빈은 하나님의 의지는 하나이지만, “우리의 정신적 무능력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다양한 방법으로 행하실 바를 원하기도 하시고 원하지 않기도 하시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Because, from the feebleness of our intellect, we cannot comprehend how, though after a different manner, he wills and wills not the very same thing.)면서, 바울은 이러한 면을 “감추었던 비밀”(엡 3:9), “하나님의 각종 지혜”(엡 3:10)라고 표현하였다고 말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는 악한 인간의 악한 의지를 통하여 하나님 자신의 의로우신 의지를 성취할 수도 있는 것이다.
4.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불경자의 행위를 사용하실 때에도 하나님은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섭리는 ‘단순한 허용’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의 발동이라 할 수 있는 ‘행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이 모든 범죄의 창시자이며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한 자들은 책임이 없는 것 아닌가?라는 비판이 생길 수 있다.
칼빈은 이러한 비판은 ‘하나님의 의지’와 그의 ‘교훈’(precept, 계율)에 대한 혼동에서 오는 것이라 본다. 즉, 칼빈은 압살롬의 근친상간행위(삼하 16:22)를 통하여 다윗의 간음죄를 벌하려 하셨지만 하나님은 근친상간을 명하신 것이 아니며,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에 대하여 이는 하나님의 명령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고백하면서도(삼하 16:10-11) 그의 행위에 대하여 하나님이 칭찬하실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칼빈은 “하나님은 행악자들을 사용하셔서 자신의 은밀한 심판으로 작정하신 것을 성취하시지만, 저들이 하나님의 교훈에 순종하거나 한 것처럼 용서받지는 못한다.
실상 저들은 자신들의 정욕에 따라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교훈을 파괴한 자들이다.”(Thus we must hold, that while by means of the wicked God performs what he had secretly decreed, they are not excusable as if they were obeying his precept, which of set purpose they violate according to their l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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