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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론의 새로운 개혁주의적 고찰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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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7 14:19 조회3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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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예수께서 전파하셨고 또 서신 서들에 명백히 증거 된 새 시대, 곧 성령의 시대는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

 

15. 예수님의 성령론

 

1) 서 론

 

본 소논문의 목적은 예수님 자신의 말씀에 근거한 성령론을 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사용한 자료는 신구약에 나타난 예수님이 성령님에 대해 직접 말씀하신 것으로 한정하였다(실제 조사결과 성육신 전의 예수님이 직접 성령님에 대해 말씀한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

기존의 조직신학의 성령론 보다는 제 한된 자료를 가지고 성령론을 구성함으로 부수적인 한 가지 잇점을 얻을 수 있다. 예수님 자신이 성령님에 대해 하신 말씀으로만 성령론을 구성한 것은 기존의 조직신학의 성령론과 어떤 점에서 한계가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성령론을 구성함에 있어서 기존 조직신학의 분류 방식을 이용하되 기존의 지적 선입관을 가급적 배제하고 작업 하였다. 따라서 필자는 신구약에 나타난 예수님께서 성령님에 대해 말씀한 것을 종합하여 주제별로 정리하였다. 본 논지의 이 탈을 방지하기 위해 주석적 논란문제 그 자체는 가급적 다루지 않았고, 반면 성령님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고 이것을 주제별로 배치하여 예수님께서 성령님에 대해 어떻게 말씀 하고 계신지를 살펴보려고 노력하였다.

 

2) 예수님이 명명한 성령님의 호칭(상징어 포함)

 

성경에는 성령님에 다양한 호칭들이 나타나고 있다. 호칭은 그 분의 속성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성령님의 호칭을 살펴봄으로서 성령님의 속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서는 예수님이 명명하신 호칭만을 다루도록 하겠다.

 

3)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24:49)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 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24:49)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을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성령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모든 선물 중에 가장 귀한 것이다.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 즉 성령님을 주신 것이다(7:11; 11:13). 이것은 구약(36:27; 2:28)에서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의 마음에 성령님을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을 상기시켜 준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은 위로부터 오며 능력을 주신다. 이 약속의 성취는 상기 귀절이 보여 주듯이 아직 성취되지 않았으나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서 성취되어 진다.

 

4) 보혜사(14:16, 26, 15:26, 16: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 (14:1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14: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15:26)(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더 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며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16:7)

 

원어는 '파라클레토스'이다. 이 동사는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도움을 부르다', '소환한다.'를 의미한다. 신약 성서에서 이것은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V.C. Pfitzner, 지미숙 역, [요한복음], (서울: 컨콜디아사,1993), p. 263.}}: '위로하다, 또는 용기를 주다, 경고하다, 교훈하다, 충고하다'. '돕는 자'(Helper: TEV), '위로자'(Comforter: AV)로 번역하기도 하였다. 요한은 법적인 용어(심판, 증거)를 즐겨 사용하기 때문에 이 파라클레토스를 피고측의 변호인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보혜사'(Counsellor)가 그래도 적절한 번역인 것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령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예수님의 묘사에 내포되어 있는 다양한 역할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 Ibid., p. 263.}}. 보혜사로서 성령님은 영원히 성도들과 함께 있으며 예수님이 말씀한 모든 것들을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신다. 원어적인 의미를 고려하면 보혜사로서 성령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사 우리를 돕고, 위로하며, 변호하시는 분임을 나타낸다.

 

5) 진리의 영(14:17, 15:26, 16:13)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14:17)(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다. 진리의 영이라는 것은 성령님이 진리의 근원이 되신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참된 진리는 성령님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으로서 진리 되신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세상은 진리를 받지 못한다. 그러나 성도들에게는 진리의 영이 함께 거하시고 또한 성도들 안에 계신다.

 

 

6) (4:14), 생수(7:38)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14)

 

예수님은 성령님을 물로 호칭하셨다. 이것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야곱 우물의 물과 대조하여 사용하신 상징어라고 볼 수 있겠다. 이와 유사하게 예수님은 성령님을 생수라고도 말씀하셨다. 이는 초막절을 맞아 물 깃는 행사와 관련된 듯이 보이는 상징어라고 하겠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7:38)

 

예수님은 물, 생수를 사용하심으로 성령님이 우리 몸과 영혼의 갈급함을 만족시켜 주시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세상이 주는 것은 야곱의 우물물과 같이 한시적이고 불완전하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영원하고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생수인 것이다. 이 생수는 예수님을 믿는 자가 받을 참된 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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