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문화와 고고학적 고찰 3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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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27 12:21 조회57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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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서는 무어라고 이야기하고 있나? 두 역사가 다 같이 무엇을 근거하고 있나? 동일한 약속 곧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그 약속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구약의 역사는 동일한 역사(하나의 역사)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차이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얘기하고 있나? 하나는 약속으로만 존재 했었고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서 즉, 그들의 자손인 우리에게서는 이것이 실현되었다는 것이다.
5. 약속의 실현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그런데 구약시대를 통해서는 하나의 약속으로만 존재했던(아브라함에게 주신 그 약속) 것을 실현시키신 구체적인 계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예수를 부활케 하심으로'라고 되어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어떤 의미를 갖는다는 것인가? 구약에서 오직 약속으로만 존재했던 것을 하나의 실체로 실현시키는 계기가 된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부활은 약속으로만 존재해 왔던 것이 역사적 현실로 실현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6.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
이것에 대해서도 말이 많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베드로의 설교에서부터 모든 내용이 연결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약속의 본질이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존재되게 함(새로운 생명 누리게 하심)이라고, 흔히 말하는 영생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감안 한다고 하면 어째서 부활이 약속으로만 존재해 왔던 것을 실현시키는 사건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관련해서 시편 2:7을 인용하여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시편 이 부분의 말씀은 항상 다른 사도들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관련해서 인용되는 말씀인데, 시편 2편 내용 그 자체를 보면 하나님께서 그의 메시야를 왕으로 세우심과 그에게 땅 끝까지를 그의 통치 영역으로 주신, 말하자면 메시야를 왕으로 세우시는 내용이 시편 2편의 내용이다.
지금까지 논의해 온 내용을 요약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의 생명 곧 새 생명의 근거가 되며 그것을 가능케 하는 사건이었다는 것, 그리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 되심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왕 되심은 또한 성령오심과 관련해서 이야기하기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만유의 주로 높이심 받음과 그 후에 아버지로부터 성령을 받아 보내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통치, 곧 부활의 새 생명을 주시는 이 통치는 성령님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하는 이 세 가지 요소가 우리 마음 가운데 하나로 연결 되어야 할 것이다.
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성취를 의미하는가? 그리고 이 부활은 왜 예수 그리스도의 왕 되심과 필연적으로 연결 될 수밖에 없는가? 이것이 우리가 논의하고자 하는 내용의 흐름이다.
그래서 이 내용이 이해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의 새 생명의 근거가 되심과 이것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성령님을 통해서, 성령님의 생명의 통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 되심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으면 내용의 흐름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오늘 우리는 약속이 완성되어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약속의 완전한 성취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직결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약속의 성취의 새 시대를 가능케 하며 시작하는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죽으심으로 죄의 권세를 멸하시고 부활하사 새 생명을 가능케 하셨고 그를 믿는 자에게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해방을 주시고 새 생명으로 살게 하신 이 역사가 약속의 성취를 의미하는 사건이요 약속된 것의 실체요 실현이요 새 시대의 본질인 것이다.
이 부활의 새 생명은 썩음 즉,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히 부패하지 아니하고 다시 죽지 아니할 생명이다.
이런 부활의 새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과 그의 생명의 통치와 직결되어 있다고 하면 이것은 결국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면 그리스도의 왕권과 그의 영광은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할 왕권이며 폐하여지지 아니할 영원한 왕권이고 권세와 영광이라고 하는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이 될 수 있겠다.
이러한 영원한 왕권이기에 이사야서 55:3에서는 "내가 너희에게 다윗의 신실한 언약을 준다"라고 되어있다. 여기서 '신실한 언약'이라고 하는 것은 히브리어로 '견고한, 흔들리지 않는' 이란 뜻의 어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윗의 신실한 언약이라고 하는 뜻은 다윗에게 주어진 영원한 왕권의 약속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바울은 여기에서 다윗의 영원한 왕권 약속이 미래에 있을 구원에 참여할 자들에게 약속된 즉, 모든 신자들이 영원한 왕권에 동참할 것을 예언한 이사야서 55:3을 인용함으로써 이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권이 그리스도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성도들도 그리스도의 통치에 참여하게 될 것을 자연스럽게 확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시편 16:10을 언급하는데, 그의 거룩하신 자로 썩음을 보지 않게 하시겠다는 말씀도 결국 이 영원한 부활의 생명, 그리스도의 왕권을 염두에 두고 하신 예언의 말씀으로 이해하고 있다.
7. 구약 역사는 그 자체로서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때까지 우리는 대개 두 가지 원칙을 살펴보았다. 즉, 신구약은 동일한 하나의 역사라고 하는 것, 다시 말해서 동질성과 연속성에 대해서 살펴보았고 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이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예 표적이라는 말도 썼다. 구약의 역사는 그 자체로 완결되지 않고 그 자체로서는 무의미하며 이것은 앞으로 올 완전한 것, 곧 실체를 가리키는 예표적 성격이었다는 것을 이미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렇게만 이야기하게 되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게 된다. 구약의 역사는 신약의 역사를 가리키는 하나의 indicator의 역할만 하였고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어서 그 자체로서는 전혀 알맹이가 없는 단지 가리키는 역할에 그친 역사인가? 라는 질문이 가능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 다른 곳에서는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는 한 가지 원칙을 바울사도는 여기서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36절의 말씀인데("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쫓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즉, 다윗은 그 자신의 시대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뜻, 계획을 충실히 수행한 자 즉, 그 일꾼 노릇을 한 자요 그 후에 잠들었다고 되어있다.
다윗왕권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 또 다른 한 면을 여기서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다윗은 죽어서 썩어졌으므로(역사에서 사라졌으므로) 그의 왕권은 영원한 왕권이 아니요 어디까지나 예표적 왕, 그림자에 불과하였고 또한 그 약속의 실체가 아니었고 진정한 실행자가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께서 부활케 하사 썩음을 보지 않게 하신 그리고 영원히 존재케 하신 그리스도만이 이 약속의 진정한 성취자요 실현자이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 약속은 실체가 되었고 실현되었다고 할 수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다윗은 그 자신의 시대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뜻, 원하심을 섬겨 이룬 자요 행한 자임을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다.
다윗은 그리스도의 예표로서 그림자로서 그 자체의 역사적 의미는 전혀 없이 오직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역할만 한 것은 아니다. 그 시대에 대해서는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충성 되게 실행한 자라는 것이다.
신구약의 역사적 관계에 있어서 제 3의 원리, 곧 계속적 완성과 불연속성에 이어 제 3의 요소 즉, 각 시대는 그 나름대로의 자체의 의미(고유한 역사적 의미) 즉, 하나님 뜻의 실현 그리고 그 뜻을 섬긴 긍정적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구약의 역사적 본문을 해석할 때 왜 그 역사적 흐름에 충실해야하는가 하는 이유가 여기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구약 시대의 인물을 통해 그리고 그 시대의 역사를 통해 이루신 모든 일들은 그 시대를 향한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 원칙을 가장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 사도행전의 이 본문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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