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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6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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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30 15:26 조회5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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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기독교강요

 

*구원의 누림 : 믿음에 의한 우리의 중생과 회개

 

우리는 지난번까지 믿음의 정의와 속성, 그리고 믿음의 확실성과 두려움 및 소망과 사랑과의 관계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믿음은 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식과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 기초한 확신,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 속에서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드러난다고 칼빈은 지적하였다.

특히 지난번에는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또한 하나님의 무한하시며 극진하신 사랑의 발로로 값없이 주신 은혜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번 강의는 믿음에 의한 우리의 중생 : 회개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믿음을 가진 중생한 자들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어떻게 그 삶을 펼쳐나가야 할 것인가,

즉 믿음을 가지게 됨은 그 삶이 회개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러한 회개의 삶을 어떻게 지속되어야 할 것인가를 중생과 성화론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 믿음에 의한 우리의 중생 : 회개

 

1. 회개는 믿음의 결과이다.

 

이 점에 관한 몇 가지 오류를 고찰함

 

1) 믿음의 결과로서의 회개

칼빈은 믿음을 말함에 있어 회개와 용서라는 두 가지 논제를 빠뜨린다면 아무런 효과도 없고 불완전하여 거의 무용한 것이 될 것이라 한다.

그런데 혹자는 회개가 믿음보다 선행한다고 하여, 회개가 믿음을 따르거나 나무의 열매같이 믿음에서 생긴다는 것을 부정한다.

그러나 칼빈은 이들의 견해와 달리, 회개가 항상 믿음을 따를 뿐 아니라 또한 믿음에서 생긴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 한다.

 

2) 회개의 근거는 복음에 있으며, 믿음은 복음을 받아들이다.

칼빈의 말에 따르면 재세례파들 중에는 새로 개심한 사람들에게 며칠 동안 참회하라고 명령하고 이 기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그들이 복음의 은혜에 참가하는 것을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는 자기가 하나님의 것임을 참으로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진정한 회개란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칼빈은 회개의 근원이 믿음에 있다고 할 때에, 우리는 회개를 하게 만들기까지에 어떤 시간적 간격이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자기가 하나님의 것임을 알지 못하면 사람은 진심으로 회개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칼빈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의 믿음, 그리고 그 은혜에 감동됨에 따른 회개의 순서 매김을 중요시 한 것이다.

 

3) 죽임과 살림

멜랑히톤(Melanchthon)의 견해를 따라 칼빈은 회개는 죽음

(mortification)과 살림(vivification)의 두 부분이 성립한다는 것을 동의한다. , “죽임은 죄를 인식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알게 된 영혼이 슬퍼하며 무서워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누구든지 죄를 진정으로 알게 된 때에는 죄를 미워하기 시작하며, 다음에 진정으로 자신을 싫어하며, 자신이 가련한 자, 멸망할 자인 것을 인정하며 딴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조금이라도 느끼게 되면 그는 심리적 충격을 받아, 교만이 꺾이며 낙담하며 떨며 용기를 잃고 절망의 상태에 빠진다.

이것이 회개의 시초요 보통 이것을 통회”(contrition)라고 부른다.

살림은 믿음에서 생기는 위안이라고 해석된다.

환언하면 죄의식으로 좌절에 빠지게 되고 하나님께 대한 공포에 싸였던 사람이 후에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와 구원을 깨닫고 일어나며 정신을 차리며 용기를 회복하고 말하자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이처럼 죽임살림을 바르게 이해하면 회개의 힘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다만 혹자는 살림을 혼란과 공포에 빠졌던 마음이 진정된 후에 받는 행복감이라 할 수 있는 기쁨”(laetitia)으로 보는 경우가 있는데, 칼빈은 살림이란 하나님을 향해서 살기 시작하고 자기에게 대해서는 죽는다는 의미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이 개념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다.

 

4) 율법 하의 회개와 복음 하의 회개(3.3.4) 부서(Bucer)율법적 회개복음적 회개를 구별하여 사용하였다.

율법적 회개란 죄인이 자신의 죄의 가책으로 상처를 받고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여 떨며 불안한 상태에 붙잡힌 것을 말한다.

한편 복음적 회개란 죄인이 큰 고통을 받지만 고통을 이기고 일어서며,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자기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악과 공포심에 대한 위로와 불행에 대한 피난처로 삼는 것을 말한다.

칼빈은 이러한 유형의 예로서, 전자의 예로는 가인(4:13)과 사울(삼상 15:30) 및 유다(27:4)의 회개를 든다면, 후자의 예로는 히스기야(왕하 20:2; 38:2), 니느웨 사람(3:5, 9), 인구 조사한 다윗(삼하 24:10, 12:13, 16) 및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무리들(2:37)과 베드로 자신(26:75; 22:62)을 들고 있다(Bucer는 탕자비유를, Melanchthon은 사울과 유다 및 베드로를 예로 들었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소망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칼빈은 결국 회개란 율법적 회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복음적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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