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의 5대교리 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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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1-02 21:59 조회61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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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 될 수도 없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영적으로 죽은 것이다. 구원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에 의할 수 밖에 없다. 만일 죄인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려면 그는 새로운 성질을 받아야만 된다. 그는 위로부터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요3:3) 그런고로 죽은 사람은 자기가 작기 몸을 운신 할수가 없는 것 같이 구원의 최초의 행동은 안으로 부터 일어날 가망이 없다. 죄많은 인간은 자기를 구원하기 위한 유인이나 원조가 필요한 것이아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 스스로 자기를 구원하도록 충고하고, 격려하고, 호소하고, 도와주기 위해서 온것이 아니라,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었다.
구원의 마음의 변화를 분명히 포함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이 변화를 갱신이라고 부르고 있다.(딛3:5) 이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부활하게 한 것과 한가지로 큰 능력에 의해서 행해지는 영적부활이다.(엡1:19,20) 그리고 이 변화의 주체는 새로 창조된 자라고 말한다.(고후5:17)
이러한 기록은 갱신을 인간의 활동이라 보는 알미니안의 견해에 완전히 반대하는 것이다.
영혼의 갱신은 우리들에 의해서 되어지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영적 죽음에서 영적 생명을 향한 순간적인 변화이다. 이것이 일어나는 순간에 있어서 영혼은 나사로가 예수의 의해서 생명으로 되돌아 온 것과 마찬가지로 전연 수동적이 된다.
갱신은 성격의 변화를 포함한다.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나무를 좋게 할 필요가 있다. 우리들은 자기의 육체적 탄생에는 전연 관여하지 않는다. 자기의 탄생을 다만 하나님의 주권적 선물로 받는 것 같이 우리들의 영적인 탄생도, 우리들 자신이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다만 하나님의 주권적 선물로 받을 뿐이다. 이영과 육과의 탄생은 어느 거나 우리들 자신의 힘, 혹은 우리들의 동의가 없이 일어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믿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일으키신 것이다.
영혼의 갱신은 우리들에 의해서 되어지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영적 죽음에서 영적 생명을 향한 순간적인 변화이다. 이것이 일어나는 순간에 있어서 영혼은 나사로가 예수의 의해서 생명으로 되돌아 온 것과 마찬가지로 전연 수동적이 된다.
영혼의 갱신은 우리들에 의해서 되어지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영적 죽음에서 영적 생명을 향한 순간적인 변화이다. 이것이 일어나는 순간에 있어서 영혼은 나사로가 예수의 의해서 생명으로 되돌아 온 것과 마찬가지로 전연 수동적이 된다.
갱신은 성격의 변화를 포함한다.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나무를 좋게 할 필요가 있다.
우리들은 자기의 육체적 탄생에는 전연 관여하지 않는다. 자기의 탄생을 다만 하나님의 주권적 선물로 받는 것 같이 우리들의 영적인 탄생도, 우리들 자신이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다만 하나님의 주권적 선물로 받을 뿐이다. 이영과 육과의 탄생은 어느 거나 우리들 자신의 힘, 혹은 우리들의 동의가 없이 일어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믿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일으키신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신앙에서 탈락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역한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나님에게는 그것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무는 없는 것이다. 예수께서 "나사로, 나오너라"고 명령하셨을 때에 강한 힘이 그 명령을 효과적인 것으로 했다. 나사로는 먼저 목숨이 되살아나고 그리고 숨을 되찾고 먹었다.
이와 같이 죄 가운데 영적으로 죽은 자도 먼저 영적인 생명으로 갱신되어, 다음에 신앙과 회개가 주어지고,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선택된 자는 복음을 듣고, 그리고 믿는다. ~그것은 반드시 최초에 들었을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해서 정한 때에 ~그러나 선택되지 못한 자는 들어도 믿지 않는다.
그것은 증명이 불충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내적 성질이 성에 적대하기 때문이다. 물질세계도 영적 세계도, 한가지로 하나님의 창조이다. 물질세계에 있어서 물은 주권적으로 술이 되고, 문둥병자는 한번 손을 대면 고쳐진다. 알미니안은 물질세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기적적인 힘을 승인한다.
왜 그들은 영적 세계에서 사람의 영혼이 하나님의 지배를 넘어서는 것 같이 하나님의 힘을 부정하는 것일까? 육체의 눈은 한번 장님이 되고나면 아무리 많은 강한 빛을 눈에 가져와도 시력을 회복할 수 없다. 죄로 죽은 영도 또한 한가지다. 아무리 많은 복음의 질리를 제공해 봐도 그것으로 영적 시력을 갖게 되지는 않는다. 시력회복은 외과 의사의 나스나 또한 기적이 필요하다.
그것이 없으면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혼의 갱신에 의해서 빨라지는 것이 아니면 절대로 복음의 진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것이다. 아담과의 계약에 있어서 인간의 운명은 그 자신의 행위에 달려 있었다. 우리들은 그 시험의 결과를 알고 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올바른 생활을 할 때에도 자기 자신이 자기를 구할 수가 없었다.
하물며 인간이 타락한 후에 그 기회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알미니안의 큰 결점은 인심에 활동하는 성령의 초자연적 힘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일이다.
만일 알미니안이 말하는 것같이 하나님이 모든 인간의 회개를 열심으로 구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바로 이 사업에 큰 실패를 하고 계신 것이 된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성년 인구중에 하나님이 한 사람의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마 25명의 인간을 구원에 실패하고 그들을 지옥에 보낸 계산이 되는 점인 것이다.
전능한 하나님의 창조력을 이와 같이 죄인이 파괴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도저히 이치에 맞지 않는다. 부활의 주는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으니"(마2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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