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강요 교리에 대하여 64/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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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30 15:28 조회57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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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야 할 것과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엄하고 무서운가를 생각할 때에 느끼는 그 떨리는 마음이다.
그리고 “사모”라는 말은 의무를 이행하는 열심과 기꺼이 순종하는 태도를 표현하는 뜻으로, 우리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 특히 순종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인데, 여기에 바울은 “열심”을 연결시킨다.
이 열심은 나는 무슨 짓을 했으며 또 하나님의 자비가 나를 구출하지 않았다면 나는 어디로 빠져 들었을까? 를 생각할 때에 자극되어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끝으로 “징벌”이 있는데, 이는 자신에 대해서 엄격하며 자신의 죄를 예리하게 검토할수록 하나님께서 더욱더 우리에게 은혜와 자비를 베푸시기를 바라게 될 것이다.
참으로 종교적인 사람들은 자기의 죄를 확실히 알게 된 때에 느끼게 되는 부끄러움과 당황함과 번민과 자기혐오와 그 밖의 죄에 대한 생생한 인식에서 일어나는 다른 감정들을 체험하게 된다. 다만 이 경우 절망에 싸여 좌절하기 쉬우나 이는 사탄의 짓이기 때문에 겸손하게 용서의 소망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은 경우, 우리는 지치면 회개를 통해서 우리를 자신 앞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에게서 도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베르나르드(Bernard)는 “찬송중의 찬송”(Sermons on the Song of Songs)이라는 설교 중에 “죄에 대한 슬픔은 그것이 계속되지 않는다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부탁한다.
여러분이 한 일을 생각하고 불안해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자리를 가끔 떠나가라.
하나님에게서 받은 은혜들을 생각하는 상쾌한 고원 지대로 올라가라. 쓴 쑥에 꿀을 섞어 보라. 달게 해서 마시면 쓴 것이 약이 된다.
여러분이 겸손하게 자기를 반성한다면, 그와 같이 자비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라.”고 강론을 하였다.
4. 회개의 열매 :
거룩한 생활, 죄의 고백과 용서, 평생 계속하는 회개
1) 외면적인 회개와 내면적인 회개
회개에서 생기는 열매는 하나님에 대한 경건과 사람에 대한 사랑과 생활 전체의 성화와 거룩이다.
성령은 먼저 우리의 속마음의 원천이 불결한 것을 정죄하시고 그 다음에 진지한 회개의 표지인 외면적인 증거에 관하여 언급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을 상대로 할 때에는 마음의 내면적인 태도에서 시작하지 않고서는 아무 소득도 없다는 것을, 다른 사람의 경고를 받을 것이 없이 스스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칼빈은 말한다.
따라서 회개를 논함에 있어 먼저 사람이 마음속에 하나님의 제단을 쌓으려면, 은밀한 더러움을 씻어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2) 회개의 외면적 실천이 주된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회개를 함에 있어 종종 (요엘서2:12)를 따라 울며 금식하며 재를 쓴다는 표현에 따라 이러한 외적인 행태로 나아감이 회개의 본 모습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칼빈에 따르면 이러한 모습은 자신이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죄인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부정할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외적인 모습만이 진정한 회개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회개란 이러한 외적인 모습 이전에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욜 2:13)는 같은 요엘서의 말씀처럼 내면적인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금식하는 것이 회개에 항상, 또 필연적으로 따르는 결과가 아니며, 금식이 반드시 회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3)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죄를 고백하는 것에 대하여
로마 가톨릭에서는 고해성사를 하지만, 칼빈에 따르면 이러한 외면적인 고백을 회개라고 한다면 이는 진정한 회개의 의미에서 탈선한 것이라 본다.
그래서 칼빈은 회개는 죄책에 대한 고백이라기보다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이며, 동시에 벌과 심판대 앞에 서는 일을 피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무거운 짐을 지고 신음하며 우리의 악행을 통곡하면서 하나님에게 사죄를 간구한다면, 그 때에 비로소 우리는 영적인 잠에서 깨어났다는 것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4) 회개와 용서는 서로 관련되어 있다.
복음이 회개와 죄의 용서라는 두 제목으로 완전히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주께서 자기의 백성을 값없이 의롭다 하시는 것은 동시에 자신의 영에 의한 성화(聖化)를 통해서 그들을 진정한 의에 복구시키려는 것이 아닌가?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3:2, 4:17)라고 선포할 때, 이는 회개하라고 권고함으로써 그들이 스스로 죄인인 것과 그들의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정죄를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충고이다.
그리고 또한 이는 그들이 육을 죽이며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나기를 충심으로 원하게 되기를 바라며, 하나님 나라를 선포함으로써 그들이 믿음을 가지도록 호소한 것이라 칼빈은 설명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한 구속의 의와 구원과 생명이 되셨다는(고전 1:3) 말씀을 들을 때에, 또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값없이 의롭고 무죄한 자로 인정받는다는 말을 들을 때에, 거기서 죄의 용서가 선포된다. 다만 이러한 은혜는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지만 믿음의 바른 대상은 하나님의 자비이며, 이 자비에 의해서 죄가 용서되는 것이므로 믿음과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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